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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요약

죽음의 수용소

-수용소 밖에서 보았을 때 수용소는 어떠한 행복이 존재할 수 없는 인성조차 허용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도 행복은 존재했다.

-인간의 자유는 어떠한 심리적, 육체적,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어떠한 삶을 규정짓고 결정할 수는 없다. 강제수용소의 모든 고난은 모든 것을 앗아갈 수는 있어도 인간의 태도,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일,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갈 수는 없다.(120)

-인간 삶에 있어서 시련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분리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인간은 시련을 받아 드릴 때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122)

-현재는 일시적인 삶이다. 그러나 일시적이라는 형태로 시간에 무감각해진다면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반면에 극소수는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도전을 얻는다.(130)

-수감자 중에서 소수는 미래의 목표를 정함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킨다. 가장 불완전할 때 그를 그 불안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132)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따르면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133)

-미래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상실할 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136)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137),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키기 위한 책임이 중요한 의미로 부상한다.(142)

-강제수용소에 겪은 정신의학의 마지막 단계는 해방된 심리이다. 해방을 꿈꾸며 희망에 기대한 자들에게 찾아온 해방 직후 그들이 겪는 심리는 기쁨이 아니다. 그들은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했다. 정신의학적인 용어로는 이인증이라고 부른다. 육체는 해방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잘 활용하더라도 마음은 거부감이 사라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152-156)

-오랜 억압으로 해방되어 자유를 얻더라도 그전과 같은 똑같은 위험요소는 도사리고 있다. 자유는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오용될 수도 있다. 혹은 비통함과 환멸을 겪는다.

-시련 이후에 받을 수 있는 보상해줄만한 속세의 행복은 없을 수도 있다. 저자는 단지 시련 후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될 뿐이다.(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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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고테라피는 로고스(의미)을 뜻으로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자발적이고 자의적인 의지로서의 치료법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의미를 찾는 과정 속에서 실존적 좌절은 가능하며, 정신의학에서 이는 심인성 노이로제,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을 누제닉 노이로제라고도 부른다. 실존적인 문제로 인한 이것은 때로는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인간 실존에 있어서 생물학적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는 오히려 인간 내면의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저해시킨다. 목표를 위한 투쟁은 중요하다.

-니체에 따르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동조주의 그리고 전체주의의 집단적 형성은 오히려 실존적 공허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권태와 나태야말로 실존적 공허를 유발한다. 실존적 공허는 자신을 위장하여 권력 혹은 쾌락, 성적유희로 보상을 추구하게 만든다.

-삶의 의미란 인간존재의 본질로서의 삶의 책임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삶은 내면혹은 그의 정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랭클은 이에 대하여 3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첫째, 무엇인가를 창조하건, 어떤 일을 함으로써, 둘째,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진리, 아름다움, 사랑 등), 셋째,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간다.

-사랑이란 상대방 안에 잠재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어떠한 시련이라도 삶의 의미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 로고테라피는 고통을 피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기본 신조이다. 그러나 시련은 반드시 필요한 전제는 아니다.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자학에 불과하다. “시련은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187) 더 나아가 시련이 가져다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233)

-인간은 마음 속의 두려움은 현실에 사실로서의 두려움을 만들고, 지나친 주의집중은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202) 로고테라피 기법은 이에 대하여 역설의도를 설명한다. 이는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소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수면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자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는 반대 행위를 통해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시키는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허무주의에 반대하며 인생의 유한성과 자유의 제한을 일종의 숙명론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은 더욱이 반대한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의 성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범정결론, 즉 어떤 일에 있어서 무능력한 인간관을 고수하는 이론에도 반대한다. “인간은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211) 따라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삶을 일회적이라고해서 염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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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의 비극적 요소는 세 가지로 드러난다. 1. 고통, 2. , 3. 죽음이다.

-그러나 비극 속에서의 낙관은 세 가지로 또한 드러난다. 1. 고통 -> 인간적인 성취, 실현

2. -> 자기 발전의 변화의 계기 3. 죽음 -> 책임감의 동기

-고통 -> 시련이 가져다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

- -> 죄를 발생된 집단적 요인을 개인적 영역과 결부시키는 일은 좋지 않다. 오히려 이 둘은 구분되어 자신 발전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일회적인 삶과 시간은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상실할 것이 아니라 과거는 자신 안에 저장되고 보존될 뿐이다.

-무의미는 우울증과 중독을, 실존적 공허감은 자살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궁극적 원인으로 이해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다면 자기 생명을 빼앗으려는 비존재의 위협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