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고난과 고통이라는 커다란 칼을 들고 있는 대적자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누군가는 “life is suffering” 삶은 곧 고통이라 이야기 했고,
불교는 “인생은 고해”라 표현한다. 이 말은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는 뜻으로 , 우리가 고통이라는 커다란 바다 가운데서 조난당해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분명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로 무궁무진하고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와 동일하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 어두움과 고통과 고난으로 얼룩진 삶인 듯 하다.
나는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고난과 고통이라는 이름의 바늘에 찔린다고 생각한다,
처음 바늘에 찔릴 당시에는 그저 잠깐 따끔하면서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만, 생각보다 큰 고통은 아니기에 별일 아니라 생각하며 참고 넘어간다. 그저 그 일이 별 것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당시에 제대로 그 상처를 눌러주지 않으면, 시간이 조금 지나서 주사 맞은 그 자리에 의외로 크게 멍이 나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몰랐지만 실은 몸은 그만큼 많이 아팠던 것은 아닐까 ? 그렇게 나는 온 몸이 멍으로 얼룩지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몸에 그렇게 멍이 크게 날 때까지 몸을 방치하다보면,
어느순간 갑자기 버티지 못하고 결국 슬럼프에 빠지는 듯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조금씩 조금씩 지치고 무기력해진다.
내가 너무 어둡고 듣기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 또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우리가 이 슬럼프에서 얼마나 빨리 일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나는 그걸 “탄력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고난이라면, 그 슬럼프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는지가
우리의 인생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관건이 아닐까?
많은 목회자들이 처음에는 온갖 열심으로 목회를 시작하지만,
곧 절망과 무기력함에 빠져서, 예배의 본질인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나, 운동과 같은 활동에 빠지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목회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나라고해서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지금의 내게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있는 방안이
너무나 막연하고 단순한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우리모두는 이 탄력성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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