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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다

어긋남


‘문무양도’ - 학문과 무예를 동시에 갈고 닦음
‘지덕체’ - 지육,덕육,체육을 아울러 이르는 말

예로부터 ‘한 사람이’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나기 위해서 겸비해야 할 것들은
크게 ‘지성, 체력, 성품’ 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최근 이 기준에 나를 빗대어 봤을 때,
나는 지성도, 체력도, 성품도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스스로 낙담하거나, 자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갈길이 멀다는 생각에 먹먹함을 감출 수 없다.

이 세가지의 조화는 정말 중요한데, 한 예로

체력이 없이는 우직하게 깊이 공부한다던지, 무언가를 이루기 쉽지않고,
성품이 바르게 다듬어지지 않은 채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그 지식이 자기만족에 그칠 뿐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기 십상이고,
지성 없이는 때때로 고립된 본인의 우매한 가치관과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신학의 길을 걸어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더니 ,
나는 온갖 것들이 부족했다. 내가 지금 당장 제대로 된 목회를 감당하게 될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변혁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극심하다.

더불어 ‘코비드 나인틴’으로 인해, 세상도 참 야단법석이다.
내 기분 탓인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도 이전보다 각박해지고 굳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이 온갖 비난과 불평으로 가득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듯하다.

이런 상황일수록,
기독교가 더더욱 온전히 제 역할을 감당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욕이나 먹고 있는 실정이기에 암담하고 참혹하다.
많은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아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라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한 쪽이 완전하면 다른 한 쪽의 나사는 빠진 느낌이든다.

그런 와중 내 모습을보니 어중이떠중이처럼 살다 자연스레 나도 어중이떠중이 같은 사람이 되고 그저그런 목사가 될 것 같아 두렵다.
내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누굴 비난할 수 있을까?

요즘들어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을 들어 사용하셔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됬다.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막연히 내가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그저 순종만한다면
나를 내 능력보다 크게 사용하시겠다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정말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라 생각하지만,
부족한 사람을 부족한 채로 사용하시지는 않는 것 같다.
적당히 적당히 준비하다가는 나도 하나님께 그저 적당히 쓰임받는 사람이 될 뿐인 것 같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면,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 사람의 실정에 맞게 훈련시키시고 사용하심을 본다.

다윗의 경우엔 사울에게 오랜시간 쫓겨다니면서, 다듬어지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통해서 이스라엘에서 최고라 불릴 통치자가 되었다.
모세의 경우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들이 그 시간동안 훈련받았으니, 그것에 맞게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 맞는 듯 하다. 그저 아무런 뿌리도 없이, 근거도 없이 특정한 일에 쓰임받았다는 말은 아닌 듯 하다.

사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매번 상기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종종 그렇다.

누군가 지식적으로 , 성품에서, 체력에서 부족하다면 , 그 이상을 위해서
보다 많은 곳에, 보다 깊은 곳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수 있는 우리가 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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