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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봉

왜 교육 현장에 창의성이 요구되는가?

*본 글은 2020년 1학기 서울신학대학교의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수업 과제 전문입니다. 과제의 방식은 타 학우가 질문한 물음에 자신이 답변을 쓰고, 자신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받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Q. "21세기 교육의 핵심 역량인 '창의성'이 현 교육 시스템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창의성이 핵심 역량으로 선정된다면 교육 현장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가?"

 

원래는 간단하게 2~3문장으로 답변해도 괜찮았지만, 평소에 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생각나는 대로 답변을 제시한 기억이 납니다. 새벽까지 과제를 작성했는데, 그때 저 자신이 봐도 '이 글은 나름.. 괜찮은데?' 라고 생각되어(자뻑하여) 이곳에 함께 공유합니다. 에듀클래스에 업로드한 답변 전문을 본 포스팅에 실었습니다. 이 점을 미리 명시합니다. (자기 표절 방지 ^^)

 

 

 

 

질문에 대한 답변  (2020. 04. 21. 화요일. 오전 2:04. 이준봉 작성)

 

 

산업 혁명을 거쳐 근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시기에는 교육이 획일화와 대량화를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의 상황으로 본다면 약 1960~1980년대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 당시에는 산업의 기반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으로 인하여 고속 성장을 모토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철저한 암기 중심의 교육과 서열화, 수직적 교육방식이 그와 같은 예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국내의 산업 환경도 이전과는 크게 변모되었다. 정보통신기술(ICT)에 의한 3차산업은 이미 말할 것도 없으며,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4차 산업혁명도 이제는 진부한 용어가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와 같은 바이오 산업(BT)을 필두로 5차 산업혁명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리기에 확연히 이전과는 다른 교육이 필요한 세대임을 절감하는 바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문제에서 제시되었던 것처럼 창의성이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창의성을 양성하기 위한 현대의 교육방식으로는 대표적인 예시로 '체험 학습'을 들 수 있겠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만 교육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자연이나 유적지 그리고 여러 직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학습자의 창의성을 증대시킨다. 이외에도 실험형 수업, 토론식 수업, 프로젝트형 수업 등 다양한 학습 방법이 창안되어, 학습자의 창의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창의성이 교육의 핵심역량이 되는 것은 학생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변화는 교육 현장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리라 예상한다. 먼저 수업의 관점(paradigm)이 변화되리라고 본다. 점차, 더는 지식 주입이 교육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교육자들이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습자가 스스로 지식을 창출하고 유연하게 구조화시킬 수 있도록 수업을 조성할 것이다. 질문 위주의 수업, 디자인 씽킹, 문제 해결형 수업 등으로 말이다. 교실 분위기는 이전보다 자유로워지리라 예상하며, 교사와 학습자의 관계는 수평적 위치에 놓일 듯싶다.

 

본 질문의 답변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본인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체제가 쉽사리 변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나 학연과 지연으로 점철된 국내 사회의 현실을 목도한다면 더더욱이 말이다. 교육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언젠가부터 중등교육은 단 한 가지의 목적으로만 귀결되기 시작했다. 바로 대학 입시다. 많은 이들은 대학을 일종의 출발점으로 본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에 따라 시작점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일부 계층은 이 격차를 조금이라도 더 벌리기 위하여 조기 교육에 열을 올린다. 그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는 결국 명문대 입학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게도 나조차 예외가 아니다. 본인 역시 누군가의 학력을 듣고 나면, 색안경을 끼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말이다. 만일 두 명의 사람이 모두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진취적인 발언과 행동을 보였다고 치자. 한 명은 누구나가 인정할 만한 스펙과 번듯한 직장을 갖춘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지식인이라고 칭한다. 아마 여럿은 그를 추종하기까지 할 것이다. 반면, 또 한 사람은 무()스펙에 취준생이다. 그럼 대부분은 혀를 찬다. '그 시간에 공부나, 알바나, 취직이나 할 것이지'라고 말이다. 이러한 광경에 대하여 한국의 교육 현장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답변이 산으로 올라갔다.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고 생각하였기에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교과서에 수록된 질문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참고서에 표기된 빨간 작은 글씨를 외우느라 애도 많이 썼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었다고 말할 순 없겠으나, 딱히 맞는 방법 같지도 않다. 구태여 늘여 쓸 필요가 없었는데, 쓰라는 말만 쓸 것이지, 왜 고생을 사서 하지? 와 같은 말씀은 마음속으로만 해주시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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