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목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사도성)

바르트


본 글은 바울의 사도성에 관한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를 요약한 것으로서 바르트의 사상을 할 수 있는 최선을 통해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1장 바르트는 바울의 사도성에 관하여 그의 “사명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 위에 있으며...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곳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사도직은 자기 삶의 처음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격적인 동일성 너머에서 자기 자신과 함께 서 있는 어떤 것이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바울이 사도로서 받은 권위는 어떠한 인간적인 위임이 아니라 신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부르심을 받은 바울을 모든 사람과는 구별된 존재로서, 자신에게 지향된 존재로 이해함으로써 사도로서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획득했습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이며 하나님의 메시지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바르트는 하나님을 ‘전적 타자’로서 그분은 인간으로서는 전혀 알 수도 가질 수도 없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전적 타자를 바르트가 표현하게 된 계기는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를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바르트는 한계를 뛰어넘는 ‘누미노제’를 포착한 것인데, 이것은 ‘전적 타자성’(Ganz Ander) 곧 ‘하나님의 신성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내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복음은 파악 불가능한 것으로서 언제나 새롭게 ‘선포되는 말씀’, 우리에게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늘 새롭게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일종의 체험, 경험, 느낌이 아닌 ‘순수하고 객관적인 인식’으로서 참여, 연대, 공동협력해야 하는 것으로 바울은 이해했습니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루 새에 이루어진 착상이 아니라 역사이자 이미 성취된 예언으로서 그 복음의 동일성 속에서 현재성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선포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을 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해의 지점을 바르트는 예수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바르트는 이를 세상과 하나님의 세상 사이에 교차하는 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해하였고, 그것이 바로 ‘역사적 예수’이며, 일종의 ‘탄젠트’ 접선이 원과 스치는 유일한 접촉점이라 부연설명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과 맞닿은 저 다른 세상은 역사적이고 시간적, 실제적인, 즉 집적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로마서 1:4절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됨을 통해서 그 의미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오직 역설(키에르케고르-영원이 시간 속에 있었다는 역설), 승리자(블룸하르트), 원 역사(오버베크-연사적 연구와 서술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그 연구와 서술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역사)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영역은 위로부터 내려온 알려지지 않은 영역입니다. 그러나 이는 부활의 사건을 통해 대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바르트에 의하면 “그 교차점이 위로부터 ‘깨고 들어옴’이며, 거기에 상응하는 아래로부터의 깨달음(통찰)이다.” 즉 부활이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계시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통하여 사람이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되었다는 것이 진정한 예수의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바르트에 의하면 은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될 때에만 은혜이다.” 그 은혜 가운데 존속하여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시간과 환경의 제약을 넘어서 부활의 선포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직분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신실하심(die treue Gottes)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장에서 사도로서의 본질은 바르트에 의하면 “사도의 존재에 속한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속하지 않은 것... 그의 존재 안에서 자신의 지평을 넘어서고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다른 것을 가리키는 모든 것을 통해 성취된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하자면 바르트는 ‘빈 공간’의 사람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빈 공간은 독일어로 ‘Hoglraum’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자신을 비우고 그가 일할 수 있도록. 이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탄식과 서두름을 통해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종의 부정입니다. 바르트에 따르면 “긍정의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의 인간을 통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로 존재한다.”

로마서 1장 강해를 통해 우리는 사도의 의미를 바르트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서 그 정당성을 신적 권위에서 찾고 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을 더욱 부정함으로써 빈 공간에 성령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것이 사도입니다.

'글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식  (4) 2020.10.03
잘 맞는 옷  (4) 2020.09.25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4) 2020.09.11
슬기로운 신앙생활  (5) 2020.08.28
불안  (6)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