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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시리즈2편 믿음은 시작이다 (바르트 로마서)

믿음은 기적이다. 바르트의 로마서 4장 요약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과연 믿음 자체를 종교적 체험의 역사적, 심리적, 명료성과 동일시할 수 있는가? 인간적인 존재의 지속적인 발전 속에 배열될 수 있는가? 믿음은 그럴 수 없다. 로마서에 기록하는 아브라함의 의는 그의 자격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바르트는 그의 의에 대한 믿음을 기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아브라함의 의를 아브라함의 ‘할례’와 전혀 다른 차원의 특성을 여기었다. 오히려 할례에 대한 의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단지 종교적인 의일 뿐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아직 경건하지도 않고 족장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전적 부르심으로서 그 안에 있는 순수한 시작이다. 아브라함은 구속사적으로 보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4:5)이다. 역사적으로 현존하는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긍정적 관계의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자체가 근원적이고 우선적인 것으로서의 종교의 역사적 현실성의 전제가 된다.

바르트는 오히려 아브라함이 받은 할례는 모든 계시의 흔적의 역사적 현실성으로 보았고, 이는 이 “현실성 저편에 있는 계시 그 자체를 지시할 뿐”(324)임을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신전인 행동의 역사적 표현이요 역사적 매개 및 연결관으로서 이해될 뿐이다. 할례 그리고 교회 등 모든 계시의 흔적들은 ‘신적인 형식’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며 성취하는 형식은 저편에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형식은 하나님의 ‘확인 도장’일 뿐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앞설 수는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결의는 그 결의의 “표”를 영원히 앞서가며, 하나님의 의도는 그 의도의 “표”를 영원히 넘어선다.”(325) 이러한 전제 속에서 아브라함의 부가적이고 임시적인 의미에서 할례의 표를 받았고, 그 역시 종교적, 교회적 현상의 세계에 참여되고 있다.

할례의 의미가 계시의 흔적으로 이해된다면 아브라함의 할례는 진정으로 자신을 의롭게 여길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는 할례받지 않고 믿은 사람으로서 받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고 이렇게 여겨진 의의 확인 도장, 그 의의 부가적이고 임시적인 표가 곧 할례가 된다. 바르트는 아브라함의 받은 할례의 의미를 “그 할례 안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된 관계”로 보았다.(326)

할례, 종교, 교회는 어떤 것을 가리켜 보이는 표이고 증언이며 긍정적인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부정과 감소와 죽음 속에서 파악되고 긍정될 때 그러하다. 이는 아브라함의 종교가 아니라 “여겨진” 그의 의로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의에 주의를 집중시키며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 굴복하라는 촉구로 이해된다.

할례 그 자체가 시작은 아니다. 오히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것으로 “여겨진” 믿음, 의로움 그 자체인 믿음의 시작, 요구, 약속에 대한 증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 곧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이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는 그것의 영웅을 그 자체가 대답할 수 없는 하나의 질문이며, 그 대답은 그리스도이며 부활이 되어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만 긍정될 수 있고 파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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