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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봉

길 걷는 인생

*본 글은 병영매거진 <HIM> 2019년 4월 호에 연재된 에세이입니다. 그때 제가 일병이었는데 한참 병영리포터로 활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록 작년 글이지만,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

 

 

 

 

 

 

      인생은 종종 길에 비유되곤 한다. 프로스트가 자신의 시에서 이야기하듯이, 천로역정에서 모든 순례자는 나그네길을 걸어간다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서 내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잠깐이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짧게나마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길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다양한 광경을 목격한다. 늘 걸어가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상황이 그곳을 채운다. 인생이 내 맘대로만 잘 풀린다면, 세상에 슬퍼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살아가기가 힘들기에 우리는 ‘무난함’을 찾는다. 그저 오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흘러가기를 바라며 말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해야 할 일만이라도 잘 끝내면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길을 가다가 반가운 친구를 만나듯이, 그동안 짝사랑해오던 여학생을 마주치듯이,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그런 날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를 위한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공부를 쉬지 않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필요한 자격증을 준비한다. 연장자나 동료의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다가오는 앞날에 대비한다. 그러한 노력을 하는 우리에게 인생은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거나, 직장에 취업하거나, 혹은 그토록 바라던 사랑하는 이를 만남으로써 말이다.

 

 

 

 

 

 

      길을 걸어가다 보면, 간혹 넘어질 때도 있다. 누구도 자신이 넘어지리라고 예상한 뒤에 넘어지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 넘어졌던 모든 사람은 그야말로 자기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넘어지게 된 것이다. 혹자는 그 또한 잘못이라고 질책하기도 한다. “네가 조심했어야지, 조심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지!”라며 말이다. 누군들 이러고 싶었을까. 백 마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조언보다는, 한 마디의 따뜻한 위로와 침묵이 더 고마운 순간이 온다.

 

      어렸을 때 사탕이나 수박을 먹고, 손이 끈적해졌던 경험이 있는가? 그 순간은 끈적한 느낌 때문에 울상을 지었지만, 길에서 정신없이 뛰어놀다가 나중에는 이내 잊어버린다. 아니, 실제로 끈적함이 사라진다. 인생에서 나타나는 문제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당시에는 그 문제 하나 때문에, 내 인생 전체가 망가져 버렸다는 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왜 그런 시답잖은 일들로 고민했나 싶다. 그 시간에 맛있는 거라도 하나 더 먹을걸.

 

 

 

 

 

 

      텅 빈 생각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구가 둥글기에 길은 끊임없이 연결되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가는 길은 짧다. 무언가 하기 싫은 일이 앞에 있을 때만, 인생은 길게 느껴진다. 마치 갓 입대를 한 훈련병이나, 기말고사를 한 주 앞둔 수험생처럼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 시절을 지나고 보면 하릴없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남는 건 추억뿐이다. 그때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따라서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단 한 가지만 당부하면서 글을 맺고 싶다. 부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길을 걷는 이유는 단 하나로 수렴한다.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약속을 잡을 때나, 집에 돌아갈 때나, 학교에 갈 때나, 직장에 갈 때나, 어딘가로 놀러 갈 때나, 심지어 슈퍼에 갈 때도(무인편의점은 제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간다. 혼자 걸어가도 편하겠지만, 함께 걸어가는 건 더욱 행복한 일이다. 나에게 피해를 입히고자 작정하는 사기꾼이 아니다면, 누군가와 길을 같이 걷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서 빨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