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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봉

기독교 교육과 신학의 관계

Prologue.

 

  본 글은 2020-1학기 <종교철학> (박종석 교수님) 수업을 듣고, 독서 보고서 과제로 제출한 전문입니다. 교수님께서 집필하신 논문을 올려주셨는데, Google Classroom에서 다시 확인해보려니까 해당 게시판과 게시물이 사라져있더군요... 그래서 정확히 어떤 논문을 요약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 나중에 찾으신 분께서는 살짝 귀띔을.. 아무래도 교직이수를 하고 있다 보니까 기독교교육과 수업도 자주 듣게 됩니다. 기독교 교육에서는 신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맛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어 공유합니다.

 

 

@Pixabay

     

     기독교 교육이라는 용어와 신학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가? 이 논제가 본 텍스트의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와 교육이라는 용어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 각각의 학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기독교 교육에 더욱 비중을 두기도 하며, 누구는 신학이라는 측면에 중심을 두고 설명한다. 기독교 교육과 신학의 관계에 관한 입장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앞으로 간략하게 네 가지 입장의 주장과 근거를 중심으로 논하여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입장은 기독교 교육은 신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기독교 교육의 방법 혹은 내용을 원리로 교육을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독교 교육을 그 자체로 신학을 하는 것으로 보는 방법이다. 위의 주장은 기독교 교육이 신학적으로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신학을 전제로 하여, 신학적으로 타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단체를 예로 들자면, 남미 신학과 여성 신학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시행되기 전에는 다음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방법론이 적합한가? 자료는 충분한가? 지도력이 뒷받침되어 있는가? 만약 이러한 의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위의 논지는 신학적인 정당성을 잃어버린다는 한계를 갖는다.

 

     두 번째 입장은 기독교 교육과 신학이 서로 상호적 작용을 하는 관계라는 의견이다. 이 주장을 했던 대표적인 학자로는 토마스 그룸(T. Groom)이 있다. 그룸은 ‘나눔의 실천’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신학과 기독교 교육의 이상적인 조화를 정교하게 정립하고자 하였다. 신학은 기독교 교육에 충분한 정보라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고, 기독교 교육은 신학을 실천적으로 접근하여 효용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침내 기독교 교육과 신학은 변증법적인 관계로 서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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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입장은 기독교 교육과 신학이 약한 관계를 갖는다는 의견이다. 주요한 학자로는 모란(G. Moran)이 있다. 그는 신학이 종교교육 일부분에만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방법이나 형식 그리고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먼저 종교교육 자체 내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심지어 때때로 신학 교육이 종교교육에 방해가 되기까지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신학이 종교교육에 불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결국, 종교교육은 신학과의 적절한 공존을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 입장은 기독교 교육과 신학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신학은 단지 신학일 뿐, 기독교 교육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특정한 신학적인 노선을 따르는 신학자들 혹은, 사회과학자들의 견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종교교육은 인간의 경험 이해와 성장의 도구로서 방편이 되는 것이지, 신학을 연구하는 데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사회과학자들은 기독교 교육을 신학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과학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기독교 교육과 신학과의 네 가지 관계에 관한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모든 입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기에, 그에 따른 타당성과 의의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 전통과 새로운 방식의 통합을 지향하며, 기독교 교육과 신학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연구되어야 함을 환기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