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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당시 나는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었다.

 

#1

 

 

2019년 그러니까 작년 여름,

나에게는 미국 동남부 애틀랜타에 소재한 한 한인교회에서 두 달 반가량 인턴 전도사로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두세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것 같다.

설교문은 어떻게 작성해야 하고, 강해 설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한인교회의 특성은 어떻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고 등등.. 

그런데 참 무색하게도, 한 일 년 지나니까 그 많은 일들이 내 속에서 진정 삶으로 녹아졌는지도 알지 못한 채 거의 다 잊혀졌다. 

그런데 그 잊혀짐 가운데서도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나를 꾸준히 생각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2

 

인턴쉽 마지막 주, 휴가로 플로리다 데스틴으로 가던 중

 

 

인턴 전도사로 섬기는 동안 한인교회의 부 목사님들과 같이 차를 타고 돌아다닐 일이 많았다. 

부 목사님들 중 한 분은 유독 장난이 많으시고, 이국적으로 생기셔서(?) 늘 재밌는 분이셨는데,

그런 그분의 평소 분위기와 다르게, 뜬금없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 만약 내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인데, 그 교회에 동성애자나 혹은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사람이 찾아와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더니, 교회에 다른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이 결사반대하시면서  

‘그 사람들을 받아들이면 내가 오히려 교회를 떠나겠다’고 말한다면, 목사로서 나는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문제 아닐지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복잡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분명 정답이라 할 수 있는 일인데..

일로 인해 내가 맡고 있는 다른 양을 잃어버린다면 그 일도 정녕 맞는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당시의 나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보았더니 문득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비유가 생각났다.   

이 비유가 생각났음에도 사실 나는 당시에 이것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확신도 없어서,

그냥 예수님의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떠나는 비유가 생각났다고 말씀드렸더니, 정답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다음에 나온 말이 아직까지도 내 머리에 맴도는 말이었는데

“우리 삯꾼 목사는 되지 맙시다”였다.  



#3 



'삯꾼 목사,삯꾼 신학자,삯꾼 신학생' ...  이 말은 생각보다 우리와 멀지 않고, 가까운 말인 것 같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내 욕심에 따라 일하는 건 삯꾼이나 행할 일이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 지난 일 년간 계속 ‘참된 목자’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름대로 ‘참된 목자’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도 여럿 생겼다.

 

'목사는 평생 공부해야만 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헤세드를 베풀어야 하며,

성적인 문제에서도 늘 조심해야 하고, 은퇴했을 때도 돈 문제에 얽매이는 삯꾼 목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등등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름대로 이런 기준이 생기다 보니, 

이런 기준이 오히려 일종의 율법이 되어버린 내 모습이 보였다. 

 

참된 목자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참된 성서학도, 신학자는 이러해야 하고,

한 사람의 참된 설교자, 목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만 얽매였다. 

 

주로 내게 그것은 공부라는 매개로 드러났다. 

아마 그것은 가장 가시적으로 나의 변화가 드러나는 일이 ‘공부’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정작 본질을 놓치고 있던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참된 목자’가 되기를 바라기 이전에, ‘참된 예배자’가 먼저 되어야만 했다.

참된 목자로, 참된 신학자로 바로 서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야만 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의 가지에 온전히 붙어있는 게 먼저였다. 목사이기 전에 나도 한 사람의 성도였는데..

 

근데 내 삶을 돌아보니 나는 아니었더라..여러분은 어떤가? 

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길이 정말로 맞는 길이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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