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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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에서는 가난한 자들의 대표적인 3부류를 ‘고아와 과부 그리고 거류하는 이방인(나그네)”로 규정하고 있다.
가난한 자를 향한 성경의 관심은 구약에만 나타날까? 당연히 아니다. 신약에도 나타나고 있다.
누가복음을 보면, 이 복음서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 깊음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를 향한 혹은 위한 복음서’(the Gospel for the Poor)라고 불린다.
사실 이러한 사실을 다 제치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먼저 사마리아인을 포함해 이방인이나 세리, 창기들을 가까이 하셨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나는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하나님의 관심은 늘 이들에게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조심스럽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들에게는 일반적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더 깊고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해서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만큼은 하나님께서 차별해서 사랑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 따름이다.
#2
룻기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히브리어 “헤세드”이다. 이 헤세드는 ‘인자, 사랑,자비’ 등 다양한 뜻을 갖고 있지만 통상적으로 ‘사랑’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듯하다.
룻기의 내용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텅 빈 인생의 나오미를 하나님께서 다시금 풍성한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는 것’이다. 룻기는 총 4장으로 구성된 짤막한 이야기이기에 다른 정경에 비해 사실 우리에게 별 다른 큰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 룻기가 다른 어떤 정경보다도 진입장벽이 낮게 , 우리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를, 또 실제적인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방 모압의 땅으로 그저 살기 위해서 기근을 피해 갔다가 남편도 자식도 모조리 죽어버려 , 그저 완전히 망해버리고 과부가 된 나오미, 그리고 그렇게 완전히 망해버린 나오미를 헤세드로 품고 나오미를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모압을 떠난 이방여인 룻,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나타나는 보아스의 그들을 향한 헤세드. 서로가 서로를 향해 헤세드를 베품으로 나오미의 인생은 완전히 구원받는다.
나는 룻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한다’는 이야기를 드디어 말 뿐만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 목회서신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목회서신의 중요 사상 중 하나는 ‘믿음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행실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보기 좋은 말 뿐인, 사랑을 행하지 않는 믿음은 그저 죽은 믿음이지 않을까?
#3
그렇다면 , 현대에 있어서 가난한 자들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부분을 같이 고민해 보고싶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가난한 자들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을뿐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며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전한 울타리가 없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그들의 울타리가 되길 바라신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 있어서 과부와 고아는 여전히 소외된 것 같다. 그리고 또 ‘노숙자’도 분명 소외 된 이들이라 생각한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고아원을 찾아가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을 향해 아버지가 되어주고, 부모가 없는 이들에게 부모가 되어주고, 가족이 없는 노숙자에게 가족이 되어주어야하지 않을까
교회 안 밖에서, 진정한 헤세드를 행하는 교회(ecclecia)가 되어,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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