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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다

Compassion


#1

나는 컴패션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한국말로는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는 마음’이라고도 번역되는 말인데, 어느 순간부터 이 단어가 내 마음에 푹..박혔다.

아마도 , 요 몇년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심을 경험하면서 나도 그 마음을 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전에는 ‘컴패션’이라는 단체에서 한 아이를 잠시 후원하기도 했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부모님의 만류로 금방 해지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지만, 나중에 군목으로 가면 이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

얼마 전에 마태복음 20장 34절 말씀을 읽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에 해당하는 말이 영어로 compassion 이라고 해석되었는데, 원어로 보면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다.
여기서 영어로 컴패션이라고 해석된 원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 인데,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창자가 움직이다. 창자가 끊어지도록 감동을 받다”

즉, 이 말은 그들의 아픔에, 그 애통함에 존재 자체가 흔들렸다는 의미를 담고있는 말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님께서 맹인 두 사람을 보시고 , 마음이 창자가 끊어질 듯 몹시 슬퍼하셨다는 말과도 같다.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말이 별것 아닌 단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원어적으로 분석 해보고 싶었다.

또 이 34절 말씀은 예수님에 의해 치유받은 사람이 직접 예수님을 따랐다는 유일한 기록이라고 한다.
이 맹인들은 예수님의 만지심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되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는 말처럼 예수님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애통함에 그들도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김남경씨의 석사 논문에 의하면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단어가 복음서 안에서 오직 예수님에게만 적용된 동사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비를 표상하는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를 제외하고 이 동사가 인간에게 사용된 예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컴패션’ ‘스플랑크니조마이’ 이 마음은 우리 모두가 품어야만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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