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굉장히 핫한 이야기일것입니다. 바로 담임목회직 승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시각이 있지만, 목회자의 아들로 자라고,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무언가 성서적인 내용들과 함께 이야기 한다기 보단 가벼운 수필 에세이입니다.
1. 사진이는 신학을 전공할꺼지?
- 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쯤 기억인 것 같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귀가하던길 차량문제로 제가 한 집사님의 차에 함께 타고 귀가를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것도 즐거워하고, 저에게 말한마디 걸어주시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하던 때였습니다. 한참의 이야기가 오가던 도중 저에 대해 이야기를 걸어오시고, 요즘엔 뭐하고 노는지, 이 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사실 뭐 초등학생 아이에게 누구나 물어볼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던 도중 집사님께서 우연찮게 그런 이야기를 남기셨습니다. 사진이는 아버지따라서 목회자가 될거지? 저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집사님은 ‘공부도 외국가서 하고와서 우리교회를 이어가면 좋겠다.’라며 저와의 대화는 마무리되었습니다.
-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 기억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어린 저에게 굉장히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에 저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도 어느정도 생기고, 목회자 자녀라는 것에 대한 부담 그리고 검사라는 공무직을 꿈꾸고 있던터라 어린마음에 ‘아 목회자 아들은 목회를 해야하나보다.’라는 착각아닌 착각을 하게 되어 지금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생각해보면 기독교계 이야기를 많이 듣기 어려운 시기였다는 것과 교계 대형교회 몇 교회에서 이미 세습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교회 성도들의 바람 중에 하나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이거다 사진이 형꺼잖아!
- 우리의 모습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길로 가게 됩니다. 왜 이런말을 할까요? 제가 신학도의 길을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하 어쨌든 저는 모교단의 신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 이야기할 에피소드는 제가 군문제로 우연찮게 휴학을 한 시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휴학을 하면서 교회의 사회참여등과 같은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현실에 나는?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세습에 대한 거부감과 옹호감이 이질적으로 공존하고 있었고, 기타 다른 여러문제를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일 어느날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부모님들의 소그룹모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주일학교 아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저에게 달려와서는 사진선생님 지금 예배당에 큰일 났다고 와보시라고 해서 어른들을 부르지 라는 마음과 함께 일단 아이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잠시 설명하자면 저희 교회는 약 120여명의 성도님이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당시 예배당 의자가 개인의자라 넉넉하게 150여석이 있었습니다. 도착한 예배당은 저의 신앙생활 역사에 있어서 가장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개구쟁이라 하는 6살친구가 있었는데, 이친구가 화가 나서 예배당 모든 의자를 다 넘어뜨려 놓은 것입니다. 제가 가서 말로 타이르고 어르고 달래보아도 주체가 안되었습니다. 저를 불러온 아이는 눈치를 저 어른(저입니다.)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화가난 아이의 부모님을 모시러 가고 예배당엔 저와 화가난 친구만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 제가 계속 타이르던 중 아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을 듣습니다. 제가 먼저 이러면 안되는 행동이야.라고 이야기를 하니, 이거 다 형꺼 라서 안되는거냐는 말을 하였습니다. 정말 생뚱맞은 대답이었습니다. 목사님꺼도 아니고 내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시 권사님들 집사님들 몇몇분들이 저를 전도사로 부르고 목사님이 될거다 라고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 입장에선 제가 충분히 이 교회의 목사님이 될 것이고, 더욱이 아버지가 목사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해할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에 저는 단순히 아이의 말이지만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한자성어 중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우리이기에 단순히 교회 밖의 시선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목회 승계의 문제는 가진 특권의 문제로 비춰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교회가 크던 작던 중요한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저는 교회에 대한 이해와 함께 목회자에 대한 이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교회 공동체와 가족들에게도 이런 문제를 꾸준히 논의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3. 우리가 놀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 세습의 문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에피소드 일수 도 있지만 마지막 이야기가 제가 생각한 교회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어보려 합니다. 시간은 흘러 저희 교회는 조금 더 안전한 장소와 공간의 용이성을 위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있던 건물에 비해 공간의 제약이 줄어들어 예배를 편하고, 자유롭게 드릴수 있게되었습니다. 지내던 중 다음세대 교육공간이 협소하다는 것을 인지할 때쯤, 앞의 에피소드에서 의자를 눕혔던 친구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집사님 선생님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들어와서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없어요. 전처럼 교회에서 뛰어 놀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였다. 정말이지 독특한 친구입니다. 사실 어른들이 생각하기 이전부터 이미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그리고 교회를 함께 다니는 부모님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물론 장소를 확보하고 재정을 집행하는 것은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교회 공동체에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익명의 그리스도인(칼라너의 이론은 아닙니다^^)으로 은신형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감히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파트는 30년이 지나면 재건축을 보통진행합니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에게 고향은 아파트인데 그곳은 사라집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이제 아이들의 영적인 고향뿐만아니라 육신의 고향이 될것입니다.
- 그러한 환경을 위해서 우리는 ‘함께’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세습의 문제도 결국 교회 내에서의 대화가 결여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일 것입니다. 다음세대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한국교회입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로 오늘 사역단상의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장 10절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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