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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단상

인도하심 따라




교회 사역을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 여러 고민들이 교차할 수 있다. 교회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때로는 여러 이해관계를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은 사역자가 사역지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일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역자의 사역지는 자신의 모교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다른 곳에 청빙을 받거나 지원해서 들어가는 경우들도 있다.

‘나’의 경우는 모교에서 사역을 시작한 경우이다. 사역을 남들보다 좀 먼저 시작하였다. 학부 3학년 당시 사역을 시작하였고 교회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그야말로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었다. 충분한 고민과 기도를 가지지 못한 체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시작하였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사역에 대한 열정은 가득했지만 지성과 인품 등 사역에 대한 전문적인 자질이 부족한 체 시작하였다. 급하게 먹은 음식은 결국 속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대학원 진학 후 점점 사역을 하며 회의감이 몰려오고, 일종의 진저리 비슷한 감정이, 때로는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교차되는 수많은 감정을 해소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체 해소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에 있다.

‘얼떨결’, ‘등 떠밀려’, ‘갑작스러운’ 사역을 시작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통감하고 있는 중이다. 주변에 나처럼 이른 시기에 사역을 하는 동료들도 있고, 충분한 고민 속에 사역을 시작하는 동료들도 있고, 때로는 여러 이해관계(관계, 정치적, 경제적 등) 속에서 사역을 시작하는 동료들도 있다. 얼떨결의 사역을 시작한 나로서는 배운 것도 많지만 온갖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처럼 힘은 들었고 회의감도 생겼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볼 때 그렇다고 해서 얼떨결, 갑작스러운, 이른 시기의 사역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얕은 지식과 짧은 생각으로 그 경중을 헤아릴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쓰시면 이른 시기에도, 늦은 시기에도 쓰임 받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쓰임을 받는 것이지, 우리가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계속적으로 구하고 인내하는 일은 사역자의 기본적인 자질이 아닐까 싶다.

‘나’의 모교는 침례교회이다. 성결교단의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현재까지도 침례교단에서 사역한다. 교단이 달라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서 전도사 시취 및 목사 안수도 늦어진다. 더군다나 사례도 전도사 평균 임금보다 적다. 인간적인 손해를 생각하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뜻 하신 그곳에 나 있기를 원합니다”라는 찬양의 고백처럼 내 뜻과 마음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인도함 속에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사역에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함부로 이동할 수 없다. 좋다고 옮길 수 없고, 안 좋다고 하여 옮길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나’의 사역지 선정의 방법이다.

얼떨결에 시작한 사역 속에서 알 수 없는 우쭐감이 있었다. 전문적인 지식과 자질이 없는데 왠지 모르게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종의 자만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자만심은 얼마갈 수 없었고, 나는 아주 호되게 연단되었다.(물론 지금도 연단되고 있다.) 사역지를 정하는 것, 사역을 시작하는 것, 하나의 감정으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인도함 속에서 무엇을 하든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직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공정하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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