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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단상

사역; 돌아보고, 나누고, 기도하자

사역지를 향하는 발걸음은 갈림길보다는 오르막길인것 같다.


신학생들이라면 한번 쯤은 뜨끔하게 만드는 찬양이 있다. 아골골짝 빈들에도 라는 찬양이다.
선배들과 기성세대들의 사역 무용담(?) 익히들어서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신학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모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될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어떻게 일을 해나가야하는지 알수 있는 곳이기에 많이들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역을 나가얄 할 때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을 것인가 필자는 학부 1학년 반모임 때 나누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당시 나는 매주 대전을 왔다갔다하면서 교회 간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도권 이남의 교회들이 사역자 구인 난에 허덕이고 있음을 알 고 있었고, 그래서 반모임때 이 문제를 함께 나눠 보았다. 하지만 다들 아쉽게도 이렇다할 기준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핀잔을 주는 식으로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거라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시간은 흘러 지금은 동 나이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느정도 기준을 잡아졌다.
우리에겐 무슨일이 있었을까?

아마도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이 있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필자도 그렇다. 내가 질문했지만 나도 사실 그당시 마음속엔 그런 마음이 있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공존하는법,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미숙했던 것이다.

보통 우리는 학생의 때에 그런 기도를 많이 한다. ‘하나님저는 어떤 직업을 가야하죠. 하나님 저는 이런일은 못할것 같아요’. 등과 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기도를 한다.

물론 쉽지않지만, 길을 구하는 모든것은 결국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따라 기도의 구체성이 결정되는것 같다. qt를 지속적으로 하고, 말씀을 통해 나의 생활을 돌보는것도 하난미 안에서 나를 알아보는 방법이 될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중요히 생각하는 것은 사고의 성장이다.
사고의 성장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숙할 수 있는 것같다. 베드로의 혈기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도 훈계하셨음을 보라. 미성숙함은 오히려 복음 전함의 방해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나의 현재의 한계를 알고 기도드리는 것, 내가 처한 상황을 하나님께 이야기하는것 만큼 객관적이게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객관성은 사역지를 결정할 때 나의 생각에 잠식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고, 더나아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으로 끊임없이 성찰하자. 그리고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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