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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단상

율법이 아닌 사랑으로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란 뭘까? 아마 이 질문은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서를 경전으로 삼는 개신교가 모든 인간에게 닮아야 한다고 제시하는 인간상은 단연 예수이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더더욱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되고자 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일컬어 ‘예수를 닮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어제 통화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한때 청소년부 교육전도사로 사역한 적이 있다. 약 5년 전의 일인데, 그때 K라는 학생이 교회에 가끔 출석하곤 했다. K는 내가 담당한 청소년부의 학생이었다. 그는 예배에 자주 참석하진 않았다. 반면, 늦은 밤까지 교회 사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있으면 불쑥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소위 말하는 ‘신실한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신앙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학생이었다.

한창 사역하였을 당시에는 내가 열 번 전화를 걸면 1~2번 받을까 말까 한 K였다. 아마 통화 레퍼토리가 언제나 ‘교회 나와라, 수련회 참석해라’ 뭐 이런 식이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그토록 전화 연결이 어려웠는데, 사역을 마무리하고 교회에서 사임하니까 이제는 오히려 K가 내게 전화를 건다. 처음에는 안 받는 게 나을까? 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종종 연락을 받는다.

통화를 하면, 전과 같이 교회 출석이나 예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요즘 어떻게 사느냐, 군대는 언제 가느냐와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곤 한다. 교회 전도사와 학생으로 처음 알게 되었기에,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신앙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어제는 K가 ‘예수의 사랑’이 무엇을 의미할까? 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자신이 교회를 다니면서 받았던 느낌을 스스럼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 교회에 나가면서 목회자들로부터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목회자가 설교 중에 외치는 말과 언어가 그저 ‘율법’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그 말을 들으니 적지 않게 공감이 갔다. 주위를 돌아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설교한다고 하지만, 복음을 외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속에는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범벅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현장. 낯선 풍경이 아니다. K는 이런 광경이 마치 율법에 얽매인 바리새인과 뭐가 다르냐고 내게 반문하였다. 솔직히 무어라고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그런 울림 없는 소리보다, ‘단지 함께 생활하면서 섬김이나 배려 등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더욱 예수의 사랑에 가까운 것 같다고 K가 말하는데, 나 또한 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앞으로 청소년 사역을 준비하는 내게도 계속 생각해볼 만한 점이었다. 그러면서 K는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만약 전도사님께서 나중에 사역을 하시게 되면, 학생들과 좀 더 노는 전도사님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랬다. 목회자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교육 부서를 맡는 여러 사역자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성도들은, 학생들은, 어린이들은 그게 다가 아니었던 거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하며, 같이 놀았으면 좋겠고,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목회자가 예수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면, 율법이 아니라 사랑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확실한 점은 설교 단상 위에서 소리치는 것만이 결코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나를 포함해서) 목회자 혹은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예수의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묵히 성찰하기를 바란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원하는 바’를 강요하지 않는다. 또, 그것을 사랑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내가 대하는 ‘학생 혹은 교인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해보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이 어떤 걸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채워주는 일이 참된 사랑이라고 믿는다. 사역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와 더불어 하나만 덧붙이자면, 목회자는 누구보다도 성실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목회자가 하는 일이 성실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성실한 생활이 목회자를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매주 설교 및 예배 집례를 준비해야 하는 목회자의 사역 환경은 성실함이 없다면 감당하기 힘들다. 내가 신학생 2학년에 사역을 시작했을 땐, ‘젊음’을 믿고 성실하지 않게 살았다. 그 결과, 엄청난 피로가 누적되어서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또한, 설교나 제자 훈련 등을 준비할 때에도 성실한 자세는 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게 한다. 영성 생활이나 신체 건강을 위해서도 성실한 태도는 빛을 발할 것이다.

언제나 성실하게, 율법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는 여러분이 된다면, 어떠한 사역 환경에 처하게 될지라도, 훌륭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나는 감히 장담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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