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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단상

사역자 듣다(경청과 애청의 시간)

 

  • 모름지기 사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듣기일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에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일을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서에서 말하는 그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라 그렇기에 교회는 단순히 친목단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들어야할까?

 

절대자와 함께하는 것은 듣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경청은 종종 순종으로 귀결되기도하다. 이는 종교 특성이다. 절대자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아마 누구나 동의하는 부분일 것이다. 신학도의 길이라는 것은 처음 발을 디딜때부터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부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우리는 왜 순종하는가이다. 그것은 앞선 조건으로 경청이 되었기때문이다. 경청은 단어적 의미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다.이다. 절대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인생의 발걸음을 바꿀 만큼의 존경이라는 것이다. 존경은 신뢰를 기반으로 자란다. 그렇다면 그 신뢰는 어떻게 자리잡았을까. 이는 이성적 타당성보다는 오히려 경험적 타당성으로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우리는 절대자와의 경험 나는 이를 교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신뢰가 자리잡을 만한 교감을 가진자들이 경청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경청은 아마도, 성서 속 많은 인물들이 그랬듯이 우리 또한 천번을 더 흔들리며, 나그네의 길을 가게끔 할것이다. 그러니 사역자의 마음가짐에는 결국 경청이 자리잡아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간에는 어떤 들음이 필요할까

 

보통은 사람들에게 경청하는 사람이 되라고들 조언한다. 근데 나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필자는 앞서 다른 꼭지에서 말이 많음을 고백(?)한적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경청의 자세를 더 요구하기도 했다. 아 근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어느순간 기계적인 들음을 하고 있었다. 그럼과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고민이 하나있었는데, 사역을 하면서 내가 정말 영혼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왠지 모를 스탠다드(standard)한 사역자의 모습은 영혼을 위해 우는 자세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나에게서는 오히려 그런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역을 하면서 굉장히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정말 밥벌이로 일을 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상담도 받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그러던 중 나의 듣기에서 부족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사랑이다.


갑자기 무슨 사랑타령이냐 할 수 있을것이다. 누구나 사랑을 말할수 있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나에게 사랑은 관심인것이다. 내가 관심을 받는 것보다는 관심을 준다는게 사랑이게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나에게 필요한것 어쩌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필요한 마음가짐은 경청보다는 애청일 것이다. 관심이 있는 듣기가 시작되니 주변사람의 목소리에 귀가 쫑끗(?)해졌다. 이는 나의 성향과도 너무도 잘 맞는 듣기의 자세였다. 그 후 부터는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편하고, 상대에 대한 궁금점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되고, 관심을 표하게 되었다.

 

사역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마음가짐은 듣기위한 준비이다. 하나님을 향한 경청과 사람을 향한 애청이 사역을 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해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