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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단상

정 원한다면 사역을 해도 좋다. 그러나,

 

     신학대학교에 입학한 학부생이 사역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약 6년 전의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 당시의 내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하여 무엇을 하든지 잘 해낼 자신이 있었고, 그만큼 열정도 대단했다. 장차 목회자와 부흥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고, 교회 개척을 하여 수많은 사람을 전도할 포부를 갖고 있었다. 그런 내가 생각한 대답은 의심의 여지 없이 ‘YES’였다. 실제로 나는 신학대학교 1학년 때부터 언제든지 교회 사역(이는 전도사 등과 같은 직책을 가지고 특정한 부서를 담당하는 일을 의미함)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한시라도 빨리 목회의 현장에 나가고자 하였기에, 주변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학과 동기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어느 날, 내게 제안을 했다.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 사역자가 퇴임하게 되었는데, 네가 와서 사역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사역 제안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 언질이 바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잠깐의 고민 후에 형에게 연락해서 “해보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나는 신학대학교 2학년 때부터 어느 교회의 청소년 부서를 담당하는 파트 전도사가 되었다.

 

     호기롭게 사역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나에게 ‘전도사’라는 직책이 주어지고, 하나의 부서를 이끌어간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사역하기 전에는 아무리 교회 출석 인원이 적더라도, 언제든지 전도하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사역을 시작했던 교회는 청소년 부서가 아예 없던 곳이었다. 즉, 청소년 부서를 완전히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현장이라고 보면 되었다. 내가 교육전도사로 부임하고 가장 첫 번째로 예배하였을 때, 출석한 학생은 초등부에서 갓 올라온 친구, 딱 한 명이었다. 사역 초기에는 언제라도 부흥시킬 자신이 있었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매번 교회갈 때마다 노방 전도를 하거나, 기도회 등을 만들어서 진행했다.

 

     하지만 3개월, 6개월…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사역은 그리 진척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것이 사역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노력을 적게 투입한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나름 열심을 다했던 것 같다. 사역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풀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약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흘렀다. 신학대학 2학년 말부터 시작해서 4학년 1학기까지 사역을 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1주일 전까지 설교문을 준비했으니까, 신학생으로서 참 바쁜 나날을 보낸 기억이 난다.

 

     당연히, 사역을 하면서 얻은 것도 참 많았다. 신학대학교에서 받았던 훈련이나, 배웠던 신학 관련 지식을 직접 교회라는 현장에 적용할 기회가 주어졌다. 머릿속으로만 구상하고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꽤나 어렵다는 점도 알았다. 다양한 학생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새로운 교회 성도님들과 교류하면서, 인간관계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함께 사역했던 형과 대화하는 시간도 나에게는 즐거움이었다. 확실히,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사역을 같이 한다는 건 나름의 위로(?)가 되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 학부생이 일찍부터 사역을 시작하는 것은 분명히 그만의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다시 학부생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모든 선택에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역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학업’을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던 듯싶다. 주중에는 학교 수업을 듣거나, 원하는 외부 강연을 들으러 가기도 하였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배운 내용을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랬기 때문에, 설교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주말이 다 돼서야 부랴부랴 썼다. 만약, 주중에 전도나 심방 혹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진행할 때는 학교 공부조차 원활히 하지 못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규칙적인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고, 준비성도 조금 떨어졌으며, 멀티테스킹(multi-tasking) 능력도 현저하게 부족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역을 하지 않는 때와 사역을 하고 있을 때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나는 작년에 군대에서 전역하였다. 제대 이후에는 한동안 사역지를 찾았지만, 어떻게 잘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마침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점이기에, 차라리 나중에 사역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약 3학기 동안의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 본다면, 사역을 한창 하고 있을 때와 비교해서 약 3배는 더 많이 공부한 것 같다. 그만큼 시간을 사용하는 비중과 밀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신학생의 본분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학부생’만큼 공부하기에 좋은 시간도 없다.

 

     어차피 ‘신학 전공’의 문을 두드렸다면, 그리고 나중에 ‘신학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면, 목회 사역은 평생토록 하게 될 것이다. 그게 가장 익숙한 일이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파트 전도사로든지, 전임 사역자로든지, 담임 목회자로든지, 아니면 교목이나 사목, 선교단체 간사 등으로 말이다. 사역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음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반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 대개 학교 방침 혹은 교단 방침상 ‘목사 안수’를 위해서 사역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즉,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때는 ‘신학대학교 학부’ 시절뿐이라는 것이다. 이 황금 같은 기간을 부디 잘 활용하였으면 한다.

 

     아,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간혹,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즉, 놀고 싶어서) 사역을 안 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교회 사역도, 공부도, 무언가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말 그대로 대학생이니까 ‘놀기에 충실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그냥 사역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역을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뭔가를 준비해야 하고, 배워야만 한다. 매 주일마다 설교나 기도회, 찬양 인도를 준비하면서 성실함이 저절로 생겨난다. 맘껏 노는 시간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그게 ‘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신도수가 급감하는 교회 현장에서는 더욱 준비된 신학생과 사역자가 요구된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사역을 정 하고 싶다면 하라. 어차피 그런 마음 상태라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사역을 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학부생이라면 학업에 좀더 집중하기를 추천한다. 그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학을 시작하는 사람이 몇 년 안 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학창시절에 온 힘을 다해서 공부 그 자체에 몰두하지 않고 정신없이 분주하게 온갖 그리스도교적 활동으로 달려가거나, 혹은 더 나아가 일부 국가에서 흔한 일이 된 것처럼 교회적 직무에 이미 한 발을 들여놓기까지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틀림없이 현명하지는 못하다.”[1] - Karl Barth

 

[1] 칼 바르트(Karl Barth), 『개신교신학 입문』, 신준호 역, 복 있는 사람, 2014,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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