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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폴봉의 종교학 뽀개기 ①] - 신화, 신들의 역사 인간의 이미지 (김현자 지음, 2004)

- Prologue.

 

안녕하세요? 폴봉입니다.^^ 한 달에 최소 한 권 이상의 서평을 써야 한다는 공지사항이 제정되고 나서 이 코너를 만들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전공하려고 하는 '종교학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서평하는 것입니다. 신학과 종교학은 학문적인 방법론에 있어서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비록 신학도이지만, 훗날 종교학 연구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제가 느낀 바와 생각한 점들을 이곳에서 간간이 나누고자 합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저 또한 더욱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종교학의 맛을 보여드리는 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폴봉의 종교학 뽀개기, 첫 책입니다 ^^

 

신화를 단지 신화로만 생각하는가?

 

저자가 체험한 종교학으로의 신화적 전향

 

     『신화, 신들의 역사 인간의 이미지』는 종교학을 전공한 저자인 김현자가 집필한 책이다. 그녀가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가르쳤던 ‘신화와 역사’의 일부를 정리한 연구물이기도 하다. 본래 그녀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교직 생활에 몸을 담갔으나, 어느 날 사색 중에 다시 종교학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훗날 그녀는 이를 두고서 자신에게 예정된 길이 아니었을까 회상하였다. 그녀는 파리 소르본의 고등실천연구원에서 종교·역사·문헌 분과 등 다방면의 학문을 수학하였다. 그곳에서 중국 고대 신화와 동아시아의 정신과 문화 등을 마음껏 연구하고 지적 갈증을 해소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주요 관심 분야는 신화학, 동양 신화로 다수의 관련저서와 논문을 출판하였으며, 현재도 책을 집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신화학(Mythology)은 종교학의 중요한 분과 학문 중 하나이다

 

신화학의 기초 입문서

 

     본 책은 신화의 내용을 다룬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 그리고 파푸아뉴기니의 트로브리안드 섬에서 나타나는 신화까지 방대하고 개괄적으로 신화의 역사를 짚어간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은 나름대로 신화와 관련 깊은 독립된 주제가 전개된다. 역사와 역사학, 문명과 의례, 신화적 사건과 인물, 이미지와 해석, 신화적 사고와 의미, 인간과 자연 등 신화학사에서 주요한 논제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여러 학자와 그들의 이론이 소개되기도 한다. 알리아데(Mircea Eliade),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뒤메질(Georges Dumézil),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프로이트(Sigmund Freud), 소쉬르(Ferdinand De Sausure) 등 다양한 학자들을 언급하면서 논지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화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신화를 대해야 할 태도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저자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화와의 조우를 나타내며 결론을 맺는다.

 

 

Joseph J. Campbell(1904-1987), Comparative mythologist.

 

신화에 대한 오해와 올바른 이해를 향한 길

 

     저자는 신화와 역사의 관계를 논하면서 신화와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신화와 역사는 허구와 사실처럼 대립적인 구도로 알려졌으며, 역사 연구에 있어서 신화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한다. 이는 꽤 날카로운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단 과거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일 것이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는 ‘신화적’과 ‘역사적’이라는 관형어의 뉘앙스 자체가 크게 상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화적이라는 표현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불가능한 일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신화적 동물, 신화적 상상 등으로 말이다. 반면,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는 사실이거나 사실에 가까운 일을 나타내는 데에 주로 사용된다. 역사적 사건, 역사적 인물 등과 같은 표현으로 말이다.

 

     하지만 역사라고 객관적 실재와 사실만을 드러내고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일갈한다. 랑케를 위시한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과거 사실에만 입각한 역사를 주창하였지만, 이는 곧 카에 의하여 반박되었다. 카는 과거의 기록은 현대인의 자기 인식이 반영된 재구성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말한 대목은 타당하다. 저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랑케와 카를 넘어서까지 논의한다. 비록 과학적 랑케 사학을 계승한 엘턴의 의견이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소쉬르와 바르트 등의 포스트모던 학자들의 언어, 해석 방법론과 역사를 함께 접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저자의 탄탄한 논지를 엿볼 수가 있다.

 

     뒤메질이 《마하바라타》에서 인간이 신적인 행위 혹은 속성들을 구현하는 것을 ‘전위(transposition)’라고 이야기한다. 즉, 신화적 표상이 나타내는 거대한 체계가 인간의 세계 내에 드러나는 모습을 일컫는다. 뒤메질은 전위가 문학적이면서도 문학을 넘어 또 다른 욕구를 갈망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바로 조상을 영예롭게 하고자 하는 현시대 사람들의 요구였다. 말리노프스키는 그의 책 《원시진화론》에서 이와 같은 점을 지적하였다. 즉, 어떠한 공동체가 영광스러운 과거 혹은 위대한 조상을 갖고자 한다면, 역사가 반드시 왜곡되어 표출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의 역사가 아닌, 공동체의 이념에 의하여 취사 선택된 역사 말이다. 저자는 나중에 이를 두고 신화가 진실을 외친다고 표현하기까지에 이른다. 그렇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지 않았다. 인간 혹은 인간이 사는 사회의 본질을 조명함으로써 보다 진실한 모습을 투영함이 주된 목적이었음을 상기한다.

 

신화의 목적은 역사를 기술하기 위함보다 인간 사회의 본질을 투영하는 데에 있다

 

     저자가 신화와 과학을 비교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그녀는 신화와 과학이 동일한 현상을 각각 다르거나 상반되게 설명하는 체계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동일한 현상을 두고서도 아예 차원이 다른 진실과 의미를 각기 표현한다고 보았다. 과학이 이성적 사유를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설명 체계라고 한다면, 신화는 감각적 직관이 더 강한 설명 체계일 뿐이다. 이처럼 신화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는 애초부터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때때로 신화가 과학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를 본다. 혹은 과학 이전의 지식 따위로 간주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용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그처럼 저자가 일깨우는 경각심에 반하여 양산된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창조과학’이 아닐까 싶다. 성서를 과학 교과서 보듯이 하는 그들은 아예 신화의 권위에 사로잡혀 비논리적인 과학적 사고를 시도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구체의 언어’라고 이야기하며 그것은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라고 보았지만, 창조과학자들은 성서의 신화적 내용을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신화 내의 종교적 의례에 대한 선이해가 부족한 잘못된 해석을 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느 사람이라도 막론하고, 특히 종교인이라면 더더욱 신화적 사고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만이 신화가 아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신화 이야기

 

     이 책은 관련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내용을 설명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저자는 신화와 역사에 연관된 이론을 설명하면서, 직접 신화를 다루는 문헌을 예시로 들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게다가 드물지 않게 신화와 역사의 관계를 드러내는 유물과 유적이 담긴 사진도 제공하는데, 이를 통하여 독자는 더 생생하게 신화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즉,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교양서의 역할을 해내리라고 본다.

 

     한편, 신화학 혹은 신화와 역사라는 학제 간 연구의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학술적 의의를 내포하기도 한다. 특히나 국내에서는 특정한 신화 서사에만 관심이 집중되어왔으며, 신화를 단지 흥밋거리로만 생각해왔던 관례의 한 가운데에서 마치 망치를 든 신화학자처럼 그간의 편견을 부수어버리는 책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글쓴이 본인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다만 구태여 한계를 지적하여 보자면, 선행 연구에 매몰되어 저자의 관점이 아닌, 기존 학자들의 입장만 나열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또, 입장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쳐도 좋았겠으나, 그 이론을 독자에게 관철하려는 태도가 적잖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하게 미진한 점이 보였을지라도, 훌륭하고 깊은 통찰을 전달하는 가치 있는 책이라는 점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다.

 

 

 

*본 서평은 2020년 1학기 <신화와 역사> 수업 

중간평가 과제로 제출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