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mm0eT/btqI9oQDLkV/4xrkssqSgdq7usspgknEtk/img.jpg)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2009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폴 에크만 (Paul Ekman)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감정체계는 긍정적인 감정은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최소화하는 행동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이는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거나 마주하는 것을 기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 모른척 하려고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목도하기보다, 기피하거나 도망가려 하는 행위은
어느 누구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모습 안에 내재해있다.
다만 문제는 폴 에크만이 “거짓말쟁이는 연습으로 완벽해진다”고 말한 것처럼 점차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가며, 그것에 자연스러워진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속상함이라는 감정도, 상실감이라는 감정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이것은 그 감정에 걸맞게 또 올바르게 다루어져야만 함은 틀림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그저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받아들이며 심할 경우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해 속이 썩어문드려져 가는 경우를 본다 .
건강한 자아에서 건강한 행동과 생각이 나온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익히 들어 알지만, 막상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요즘 다시금 말과 감정이라는 것을 묵상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집중하며 주의를 둘러보면 나를 포함한 현대인의 대부분이 이 부분에 취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말과 관련해서 성경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단어로는 “예언”이 있을 듯 싶다.
구덕관의 ‘이스라엘 예언과 예언서연구’에 따르면 ,
예언자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나비’인데, 이 단어의 어원을 추적해 나가면 아카드어의 ‘나부’의 의미권인 ‘지명된 자’ ‘소명받은 자’ 라는 의미에 도달한다고 한다.
또 영어의 prophet는 헬라어 prophetes에서 온 것으로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공공성”을 의미한다.
종합하면 예언자라는 것은 사실 장래사를 미리 알려주는 예고의 특성보다는 ,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는 공공성을 겸비한,
또 그렇게 맡기신 자’라는 의미이다. 물론 예고의 특성을 부인할수는 없지만, 중심 방점은 하나님의 의를 공공연하게 선포한다는 것에 있다.
예언이 단순히 예고의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언하는, 공공연한 선포의 특성을 가진다면 이는 오늘날의 설교자의 선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말씀과 선포는 설교자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 오늘날 모든 현대인들의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방식인 말과 감정은 설교와 분리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언하는 목사는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고,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 없는 선포는 매가리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까, 사람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렙- 쇼메아 (듣는 마음) (3) | 2020.10.03 |
---|---|
고대 근동 문화 (4) | 2020.09.26 |
늑대와 양치기 소년 그리고 레갑자손 (5) | 2020.09.05 |
옷자락 (4) | 2020.08.29 |
어긋남 (4)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