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목사’라는 직분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하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그 순간 내 삶이 무언가 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내 삶에 눈에 띄는 무언가 큰 변화가 있어야만 할 것 같았는데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그저 조용하고 잔잔하게 보낸 시간들이였던 듯 하다.
남들처럼 신학교에서의 학교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한다던지, 성경을 열심히 읽지도 않았고,
신학,신앙 관련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 모든 준비가 내게는 너무 막연하기도 했지만,
‘꼭 지금 준비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강렬했던 것 같다.
그 대신에 마음 한 자리에 자리 잡았던 것은,
또래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간 미션스쿨에 다녔지만, 기독교 동아리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미션 스쿨에 다녔지만 제대로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코람데오라는 기독교 동아리가 있었지만
이 동아리는 매주 있는 채플을 섬기는 동아리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서
어느 악기도 다룰 수 없는 나는 함께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래서 그들이 부럽기도 했고, 한편은 함께할 수 없음이 야속하기도 했다.
더불어 아버지가 개척하신 교회도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
유년부,초등부,청년부도 없었기에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는 또래친구들과 함께 열렬히 예배를 드린 적이 없어서
함께 드리는 예배나 기도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던 것 같다.
내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또래친구들과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했다.
남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그 시간들이
내게는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그런 순간들을 꿈꾸며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와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런 순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운 그 순간들이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는 지루한 부분이 커트된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잣대를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누군가에게 지루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극적인 순간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인생에 모든 순간이 소중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어떠한 큰 결심을 한 당시에
인생에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우리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그저 단조롭고 답답한 그 시간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내 인생에 어떠한 극적인 무언가가 일어나길 바라지만
하지만 실상은 잔잔하고 조용하게 조금씩 조금씩
그 극적인 일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애초에 생각해보니, ‘기승전결’이라는 구조처럼
우리의 인생도 단조로운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후에 비로소 극적인 일들이 더더욱 깊이 빛날 수 있는 듯 하다.
신학교를 진학하기로 결정하고, 수없이 많은 각각의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해서
지금 당장 당신의 삶에 무언가 커다란 변화가 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 조금씩 조금씩 그 단조로움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인생에 극적인 무언가를 이루실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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