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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신앙 이야기

부르심을 따라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대학을 선택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되었지만,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신학과에 진학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다. 이곳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가 신학과에 입학할 것을 결정한 이후, 겪었던 일들과 나누고픈 생각을 함께 공유해보고자 한다.

 

신학과를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듯하지만, 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한 시기의 신학과 입학 커트라인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 대학마다 이전 년도 입시 가능 점수를 공고해놓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적을 받으면 입학하겠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학별로 수시 및 정시 성적 산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을 자세히 보고 나의 성적을 분석하면, 대략 이 정도면 갈 수 있는지 없는지 감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만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준비했다. 그때까지 받은 성적이라면 충분히 원하는 대학의 신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렇다.

 

그럼 그 뒤로는 공부를 하지 않았냐고? 맞다. 학교 공부에는 더 이상 집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펑펑 놀고 자는 생활을 한 건 아니다. 내게 남은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로 등교할 때 교과서를 들고 간 게 아니라, 신앙 서적들을 들고 갔다. 어차피 그 당시 내 꿈은 목회자이자 선교사였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쓴 책들만 주로 읽었다. 설교집, 간증집, 경건 서적 관련 책들을 학교에서 읽었다. 고등학교 2~3학년쯤 되면, 선생님들이 자습 시간을 많이 주신다. 그 시간마다 다른 학생들이 수능 문제집과 내신 중간 기말 준비를 할 때, 나는 독서대를 피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국내에 알려진 유명한 목사나 선교사가 쓴 책들, 찰스 스펄전의 설교집, C.S.루이스의 저작, D.L.무디 일대기, 부흥사가 되는 법(?) 등.. 읽으면 막 신앙이 뜨거워 것 같은 느낌이 나는 책들이 있지 않는가? 그때는 이게 나의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솔직히 신학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고등학생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학업과 바쁜 스케쥴로 희미해져 가는 신앙을 다시금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기도 하였으며, 가끔 수업을 들을 때에도 적절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신앙 서적을 읽는 이들의 심정과 느낌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준 것도 이전의 경험 덕분이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과거의 행동이 후회되기도 한다. 첫째는 조금 더 고교 과정 공부에 충실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때 배운 지식이 수능 이후로 모두 쓸모없어질 줄로만 알았다. 솔직히 수학 삼각함수, 미적분, 이런 게 살면서 어디에 필요한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심지어 수학도 나중에 뭔가를 심화하여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나처럼 학교 공부에 소홀히 하거나 배척하지(?) 않기 바란다. 그게 언제 당신의 물맷돌이 될 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앙 서적들 말고 일반 철학 도서나 사회를 다룬 책들도 꾸준히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때는 신앙 서적을 읽는 게 가장 영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허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조금 아쉽다. 그때는 일반 서적을 읽으면 혹시나 세상의 가치관(?)이 내게 들어와서 신앙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목회자나 부흥사, 신앙 서적에서 그러한 논조로 자주 이야기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틀려도 한참 틀린 얘기라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반 교양 서적이나 인문·철학·사상·윤리 등의 책들, 그 외에도 사회나 경제, 과학을 다루는 책들은 우리의 사고를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 특정한 논리나 독단에 빠지지 않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신앙 서적, 간증집이라고 하여 그것을 읽는다고 더 영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음악이나 역사를 다루는 책을 읽음으로써도 얼마든지 전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별히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자가 되기를 지망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사회 전반을 다루는 책을 읽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만나게 될 성도들은 사회 한복판에서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등학교 시절에 후회가 되는 일이 조금 있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꽤 뿌듯하고 아름다운 추억도 있다. 그건 바로 ‘학교 기도 모임’을 가졌던 일이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미션스쿨이 아니었기에 종교 관련 동아리나 모임은 없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 열정적이었던 나는 학교에서도 공동체가 세워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년 선배를 알게 되었는데 그분도 나처럼 신학과를 지망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단시간에 가까워졌으며, 끝내 학교에서 기도 모임의 시간을 갖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3명이 모여서 학교 점심시간마다 모여서 기도했다. 학교를 위해서, 친구들을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1학년 때부터 기도 모임에 참여해서 2, 3학년 때에는 리더 역할을 맡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때의 경험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기도 모임은 지금도 생생할 만큼 뜨거웠고, 어려웠으며, 행복했다. 훗날이 되어 나는 그때 기도 모임의 추억을 자주 이야기한다. 사역 현장에서, 대학 수업에서, 멘토링 시간에도 말이다. 만약 여러분이 신학과에 가고자 한다면, 중·고등학생 시절에 (혹은 입시를 준비하는 기간에) 공부에만 머리를 싸매지 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도 쌓았으면 좋겠다.

 

 

나는 선택의 자유가 각자에게 있지만, 나중에 보면 그것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하루는 면접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가 약 3시간에 가까웠고, 다음날 면접이 시작되는 시간은 오전 9시인가 10시였다. 자칫하면 늦게 도착해서 면접을 보지 못할 수도 있어서 나는 하루 전에 미리 학교 근처에서 자고 면접에 가려고 했다. 대학교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계획 없이 대학으로 갔다. 도착해서 경비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전날 미리 예약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근처 숙박업소에 갈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주머니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학교 도서관이 24시간 개방이라서 일단 그곳에 들어갔다. 무거운 가방을 풀고, 지쳐 있던 터라 도서관 앞에 있는 긴 의자에 누웠다. 아예 거기서 자고 일어나 면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누워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도서관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때가 거의 새벽 1시인가 2시였다. 나는 그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저씨도 나를 보면서 걸어오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주셨다. “학생, 어디에서 왔어? (나는 그때 교복을 입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야?”라고 말이다. 나는 간단하게 소개한 뒤에, 내일 학교 면접을 보러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그 아저씨가 자신의 집이 근처에 있는데, 거기에서 자고 내일 면접을 보러 가라고 말씀해주셨다. 너무나도 반가운 말씀이라서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의 집에 가서 짐을 풀고 꿀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에 샤워도 상쾌하게 하고, 목사님께서 사주신 아침밥도 먹은 뒤에(콩나물 해장국, 그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산뜻한 마음으로 면접장에 갔다. 떨린 면접을 치르고 나서 나중에 감사하게도 그 대학에는 합격을 했다. 실은 그 대학이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서울신학대학교다.

 

 

그때 경험한 환대의 기억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리의 모든 결정, 그 이면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내가 앞으로 신학을 공부하든, 그렇지 않든, 여러분이 신학과에 오든, 오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실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단지 내게 주어진 하루 동안 충실히 살아가는 것, 내 곁에 함께 사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뿐이다. 부르심을 따라간 그곳에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