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문의 길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사람

 

     내가 학문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공부’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나에게 학문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신학대학에서는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목회나 선교와 같은 사역 기술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내가 한 일은 바로 전도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게 나의 캠퍼스 라이프 중 우선순위 1순위가 될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서만 활동한 게 아니다. 각종 선교 동아리, 예배 동아리, 기도 모임에 참여했다. 물론 이러한 삶을 살았던 걸 후회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그 모든 경험 역시 내게는 필요한 시간이었으며,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단지 내가 안타까웠던 점은 ‘그것에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학문에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인생에 길이 남을 만한 체험을 했다. 그때 아무런 생각 없이 했던 행동 하나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수업 청강이었다. 당시에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어떤 분이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대학원생이기도 했다.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께서 다른 분야의 학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에, 우리 대학으로 공부하러 오셨기에 그러했다. 대전의 K대학에서 물리학과 우주론으로 박사 공부를 마치신 뒤에, 내가 재학하는 학교의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공부하시는 분이었다. 대학원생인 동시에 강의자이신 것이다. 그분의 약력이 특이하였기에, 나는 호기심으로 그냥 수업 청강을 신청했다. 그분이 담당하시는 두 개의 수업을 모두 청강하였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분이 개설하신 수업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학 발전과 창의성>이라는 수업이었다. 하나는 과학신학에 관련된 분야, 또 하나는 과학철학 및 과학사에 관련된 분야였다. 본래 과학에 정통하신 분께서 과학 이야기를 하니까 상당히 인상 깊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나봤기 때문이다. 칠판에 판서하며 설명을 해주시거나, 책을 읽으며 해설해주시는 모든 부분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또, 애초에 약간 범접할 수 없는 두뇌를 가진 분이시기도 했다. 그분의 수업을 한 학기 듣는 내내 무척 집중해서 들었는데, 아마 지금까지 들었던 수업 중에서 가장 열의를 갖고 임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질문 한두 개를 들고 가서 여쭤보았다. 그분이 집에 가시는 길에 같이 걸어가면서 질문을 드린 적도 있다. 하루는 이야기가 길어져서 저녁 식사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시면서 대화한 적도 있었고, 언제는 수업이 끝난 뒤에 콜로퀴움(기획 강연)에 함께 지하철을 타고 들으러 가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그분의 수업을 들었을 때가 생생하다. 한 학기의 시간 동안 ‘학문에 대한 나의 자세’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공부해서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즐거움이자 기쁨으로 느껴졌던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인 듯싶다.

 

 

 

 

     한편, 대학에 입학하면 대개 학교마다 학생들을 전담하는 지도교수가 있다. 학생들과 상담하면서 캠퍼스 생활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다. 이러한 업무는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교수님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다. 어떤 분께서는 학생을 한명 한명 모두 만나시면서 상담하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휴학이나 전과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위주로 상담하시는 분이 계시기도 하다. 대학 1학년 때 내가 만났던 분은 모든 학생을 만나서 최소 한 번 이상은 상담하셨던 분이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교수님과 상담 겸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분위기가 참 따뜻했던 것 같다. 또, 학업과 진로 등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져주셨던 기억이 남는다. 대학 교과과정에서 지도교수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은 총 6학기(3학년 때까지)로 정해졌으나, 나는 그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교수님을 찾아갔다. 상담하면서 여러 조언을 들을 수도 있었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지도교수님과 매주 스터디를 하면서, 또 방학 때는 2박 3일로 전공 서적 강독회의 시간을 가지면서 더욱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학문과 공부에 힘을 쏟도록 해주었다. 요즘은 코로나 시대에 적합하게 온라인으로 스터디를 하는 중이다. 아마 지도교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학문에 이토록 진지하게 관심과 열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끝으로, 나는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을 같이 쓰고 있는 친구들이 바로 대표적인 동학(同學)들이다. 우리는 신학과 학부 동기이기도 하며, 함께 군종사관후보생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모여서 자주 밥을 먹으면서, 대화도 나누고 강의를 같이 수강하였다. 우리는 각자 공부하는 것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기에 죽이 잘 맞았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대화하다가,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나왔다. 정말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모임을 결성했다. 일명 ‘글쓰는 소년들’이 이때 탄생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에 약 한 편의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홈페이지도 당일에 바로 개설했다. 매월 한 번 정도씩 비대면 모임으로 회의를 하고, 한 학기에 한 번은 서로 공부한 것을 나누는 연구 세미나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쓰기로 한 것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약 5년 반에 가까운 나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니, 내가 학업과 공부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교수님, 친구들, 여기에 다 소개하지는 못했으나 선·후배들을 통해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그 모든 사람은 내가 학업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때로는 진심 어린 조언과 함께, 때로는 냉정하고 정확한 분석과 함께, 때로는 같이 웃고 울면서 말이다. 신학대학에 입학하려고 준비하는, 혹은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도 학문의 길을 걸어갈 때, 손잡고 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를 소망한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과 과정은 아마 주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훗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좋은 동료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학문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럼프는 어렵다  (3) 2021.06.01
Re-turn  (3) 2021.05.31
단 한번의 반짝임  (3) 2021.05.30
읽기 시작한 이유  (2) 2021.05.27
다이아몬드  (2) 202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