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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학점이 지하로 폭락했던 어느 날

 

     공부 슬럼프에 대한 글을 써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공부를 평소에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슬럼프라고 할 만한 때는 없었다. 그렇게 무슨 일이 있었나 골몰하다가,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사건은 나의 학점이 거의 바닥으로 추락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과거의 추억을 돌이켜보면서 학점과 연관해서 내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대학교 1~2학년 때 나의 학점은 비교적 잘 나오는 편이었다. 일단 학교에서 내가 평소에 궁금했던 것,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배웠기 때문에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과제나 시험이 있으면 그것에 완전히 몰두했다. 출석도 거의 빠지지 않았으며,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벼락치기로 공부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해야 할 것들을 잘 준비했던 터라, 괜찮은 학점을 받았다. 그 덕분에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소위 ‘과탑’이라는 것도 몇 번 해보았다.

 

     그런데 고점(?)이었던 학점이 어느새 폭삭 주저앉게 되었다. 반 토막을 넘어 그 이하로 내려갔다. 아마 지하로 추락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렇게 된 일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갈 시기였던 듯싶다. 그때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사귀고 있었다.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방학을 기점으로 관계가 조금씩 소원해지게 되었다. 다시 돌이켜보면 내가 잘못한 날이 많아서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뭐, 아무튼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닥 중요하진 않으니(?) 넘어가고…….

 

     말하고자 하는 건 그때의 기점으로 나의 학점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고공행진을 달리던 학점 그래프가 수직 강하를 했다. 대체 왜 그렇게 된 건지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성 친구와 헤어진 뒤에, 나는 감정 컨트롤을 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공부도 손에 잘 잡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 난 바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들을 찾아다녔다. 뭔가 생산적인(돈을 벌음으로써라도) 일을 하면 감정이 가라앉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때가 학기 중이었는데, 결국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고야 말았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그렇게 나는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밤에는 편의점 일을 하러 갔다. 그럼 잠은 언제 잤을까? 편의점 업무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른 새벽 정도가 되었다. 그때 잠을 조금 자고 수업에 들으러 갔던 것이다. 다행히 오후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그나마 괜찮았다. 오전 내내 자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면? 아마 내 기억으로 절반은 수업을 빼먹거나 지각했던 것 같다. 설사 수업에 들어가더라도 그야말로 비몽사몽 한 상태로 강의를 들었다.

 

     나중에는 설상가상으로 편의점 알바를 하나 더 잡았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편의점 주중 야간 업무, 편의점 주말 야간 업무, 대학 공부 이런 사이클로 학기를 보냈던 것이다. 이건 지금 생각해봐도 아주 가관이다(;;). 그 정도 상태가 되니까 수업을 제대로 들었던 날보다, 잘 못 들은 날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과제도, 시험도, 점점 밀리고 빼먹게 되었다. 어느 전공필수 과목은 아예 기말고사 때 늦잠을 자서(ㄱ-;) 시험을 못 봤다. 그 과목은 내 성적표에 표기된 유일한 ‘D’가 되었다. 이것은 F를 제외하고 대학생이 받을 수 있는 최하의 점수이다. 다행히 중간고사나 다른 과제는 그나마 완수해서 그런 건지 F는 안 받을 수 있었다. 이것 말고도 내 성적표는 C-, C, C+이 난립하게 되었다. 조금만 더 떨어졌다면 학사경고를 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 지난 일이니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참 하루하루가 울적하다, 피곤하다, 나아졌다, 그랬던 것 같다.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으니, 이것을 슬럼프라고 말해도 딱히 틀리지는 않겠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눈에 보이는 학업’에만 너무 치중해서 살았다는 게 느껴졌다. 다시 말해, 좋은 학점을 받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당연히, 학점을 잘 받아놓으면 뭘 하든지 유리하다. 또,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함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학업에만 삶을 전부 투자하는 건 약간 위험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때때로는 감정을 해소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점도 깨달았다. 그게 취미이든지, 운동이든지, 좋아하는 무엇이 되었든지 말이다.

 

     결국,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때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모래 위에 성을 세우듯이 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신학생의 학업은 최소한 유지되어야 한다. 예전 그 당시의 나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삶은 곤란하다. 그건 나에게도, 남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학업과 더불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두 가지 잡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그게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질문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런데 명심할 점이 있다. 이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소하고 즐거운 취미는 그걸 하는 자체의 시간도 좋지만, 결국 학업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이는 내가 직접 경험한 바이다.

 

     공부하는 학생에게 슬럼프는 언제든지 찾아온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헤쳐나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슬럼프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슬럼프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 되겠다.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슬럼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 답이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그리고 만약, 지금 슬럼프에 빠진 누군가가 있다면 다시 잘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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