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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글목의 막연한 미래

 


학교에 입학하고 참 많은 시간을 헤매었던 것 같다. 성서신학은 막연한 성경공부 심화반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나의 얕은 편견은 깨졌다. 그리고 3학년까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학업에 대한 혼란이 극심했기도 하였다. 여러 신학들을 경험하고 목회자의 부르심에 확신을 가졌던 4학년, 마침내 나는 내가 관심 있는 전공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이론신학(조직신학-교리신학)이었다.

우리 학교 이론신학은 상당히 흥미로웠고 좋은 교수님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이해하기까지 수많은 시간들이 소요되었다.(물론 지금도 갈 길이 멀었지만) 그러나 인간 구원에 관한 문제들처럼 신앙의 직접적인 실존적 상황들은 필자로 하여금 그곳에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론신학은 상당히 어려웠다. 철학적인 사고들이 많았고, 교리적인 역사, 단어 등 ‘나’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 힘든 산을 견뎌내지 못하면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을까? 더 고집스럽게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어려운 수업에 참여하며, 쟁쟁한 선배들 틈 사이로 파고들어 열심히 수업을 경청했다. 지난 학부 및 대학원의 시기는 늘 나의 학문에 대한 겸손의 시간들이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배우면서 알았다.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는 사실을 말이다.

좋은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인고의 시간을 버텼다. 그러면서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고, 쉽게 말하면 감을 잡았다. 그러면서 나의 눈을 더욱 휘둥그레 만든 것은 바로 몰트만의 신학이었다. 학부 2학년 때 무슨 깡으로 몰트만 수업에 들어가서 그 대단한 선배들 틈에서 그의 책을 읽었는지, 당시 너무 괴로웠던 것은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철학과 기본적인 신학의 교리와 이론, 단어들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몰트만의 신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부적으로 하고 싶은 전공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몰트만의 책 「십자가의 달리신 하나님」과 「희망의 신학」에 크게 매료되어서 그런 것인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체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서 그 비밀이 담겨져 있는 성서에 대한 더 깊은 의미들을 공부하고 싶고, 우리 삶에 참된 희망이 무엇인지, 그 희망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더 학문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하고 싶다.

확실한 것은 교리신학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할 것과 성서신학에 대해서도 공부할 계획이다. 책을 놓지 않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문학과 음악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고 싶다. 지금은 이미 선행된 연구 주제를 살펴보고 정리하는 일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창조적인 연구를 진행해보고 싶다. 우리 시대에 적합한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을 말이다. 교부신학부터 현대신학의 좋은 통찰을 통해서 복음과 연계한 목회사역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