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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준비들

나에게 신학대학교란 ‘드넓은 초원’이다

 

     3일 전에는 졸업을 했다. 여기 4명의 주요 집필진 중에서는 가장 늦은 시기에 학부를 마쳤다. 입학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6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신학대학교라는 곳은 내게 어떤 기회와 권리를 선물해주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신학대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정을 도와줄 하나의 유용한 경험이 된다면 좋겠다.

 

     우선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참 순수(?)했던 것 같다. 현재 상태는..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누군가의 말을 곧이 곧이 잘 믿었고, 어떤 사람이 부탁하는 경우에는 모두 승낙할 정도로 말이다. 좋게 말하면 긍정적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느 교회에 한 명씩 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라고 보면 쉬울 것이다. 솔직히, 신학을 전공하기로 고민해본 사람들은 대개 이런 유형의 학생 혹은 성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뒤에는 속이 아주 다 시원했다. 왜냐하면 신학대학교에서 개설하는 수업들은 거의 나의 관심사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역사 등 대체 이런 걸 왜 배우는 건지 몰랐다. 지금에야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만,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목회’나 ‘선교’에 유용한가, 그렇지 않은가만 놓고 판단했다. 자연스럽게 성서나 신앙 서적과 같은 책들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나머지 공부들은 그렇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학대학교에서는 매일 배우는 게 성서 관련 교과목이고, 심지어 교양 수업도 기독교 관련 강좌들로 넘쳐났다. 말 그대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강의를 수강했다. 물론, 신학 수업이라고 항상 재미있게 들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건 수업마다 천차만별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강좌가 얼마나 내게 의미 있는가?’라는 관점에서는 꽤 만족할 만한 수업들이었다. 결국, 목회나 선교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말이다. 그만큼 강의실에 들어가는 일이 설레면서도 보람이 됐다. 또, 신학 및 기독교 관련 수업들은 나의 신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한편, 신학대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점은 바로 ‘죽이 맞는 친구와 공동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신학과에 진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신앙적 배경을 갖는 것 같다. 각각의 인생은 모두 다르겠지만, 한때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고 경건 훈련을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고충과 행복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당연히 죽이 잘 맞는 친구나 선·후배를 알게 될 확률도 높다. 현재 이 책만 하더라도 친한 동기들의 모임으로부터 기획된 것이다.

 

     동아리 활동이나 대학 내 특별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관심사에 맞으니까 부담 없이 자발적으로 참가하곤 했다. 전도 동아리, 선교단체 동아리, 성서 주해 동아리, 기도 모임 동아리, 북한 선교 동아리, 신학 스터디 동아리 등등. 또, 방학 중에 주로 진행되는 특별활동 중에서는 해외 비전트립, 국내 수련회 봉사 등에 참가한 기억이 난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면 모임에서 ‘하는 일’ 자체도 즐겁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기독교인이냐, 비기독교인이냐에 상관없이 말이다. 보람된 일을 찾아 모인 이들은 대개 멋진 사람들이었다.

 

     신학대학교에서의 4년, 혹여나 신학대학원까지 간다면 3년, 이렇게 7년의 세월은 적지 않은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지만, 잘만 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물과도 같은 기간이다.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체험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기를 바란다. 꼭 신학이나 기독교에 관련된 활동만 하지 않아도 괜찮다.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보라. 취미가 되어도 좋고, 버킷 리스트라면 더 좋다.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행동만 아니라면, 마음껏 도전하며 알찬 시간을 누렸으면 한다.

 

     누구는 ‘신학생이 되어서 자유를 만끽해도 괜찮냐? 한시라도 바삐 훈련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라고 그런 생활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너무 무리하다시피 몸을 굴리던 적도 있었다. 빼곡하게 계획 및 스케쥴을 잡아서 몸을 혹사시킨 나날이 생각난다. 심할 때는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 열심을 내었다. 근데 돌아보니까 그건 하나의 추억이 될 수는 있어도, 정상적인 생활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 적절하게 공부하고(일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균형 잡힌 삶이 결국 장기적으로도 이득이다. 어쩌면 신학생이 신학대학교에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요소는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대학생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신학생의 자유는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 최대한 주어진다. 나중에 목회 사역을 하거나, 혹은 그와 무관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만한 시간을 누릴 수는 없다. 특별히 목회나 선교와 같이 종교 직종에 헌신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개인적인 시간을 확보하기가 힘들 것이다. 내 경험으론, 파트 사역 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들었다. 주말에 부서를 섬기는 일조차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설교부터 시작해서, 심방이나 연락, 수련회 준비, 교회 행사 지원, 또 여러 잡다한 일들……. 하물며 전임 사역자의 노고란 오죽하겠는가.

 

     그리하여 학부 졸업을 하고, 대학원 입학을 앞둔 마당에 내가 느끼는 신학대학교란 마치 ‘드넓은 초원’과도 같다. 초원을 생각해보라. 넓디넓은 허허벌판에 초록빛의 풀과 나무가 무성한 곳. 주위를 둘러보면 건물이나 막혀있는 것이 전혀 없는 자유로운 공간. 때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세찬 비가 내리기도 하는 곳. 또 가끔은 따스한 햇볕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곳. 신학대학교란 바로 그러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공동체. 교수님께 적절히 지도를 받으며, 선·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마음껏 새로운 일을 계획할 수 있는. 훗날 전임 사역자가 되어 뿔뿔이 흩어져도, 언제라도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모이는 공간. 그곳이 신학대학교라고 감히 정의내려본다.

 

     비교적 장점에 가까운 이야기만 언급했는데, 어쩔 수가 없다. 여기에서 나는 그만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반대편 얘기도 꺼내는 것으로 하자.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이것이다. 신학대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 어디에서도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비록 아주 가끔 후회할 때가 오기도 하나, 그것은 행복한 기억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University of Cam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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